아이와 방콕 여행, 태국 요리를 배우다

'먹방'을 넘어 '쿡방'이 대세다. 

맛집 탐방을 하다보면 '재료가 뭔지, 어떤 비법이 있는지' 궁금하기 마련이니 '백종원의 3대천왕' 같은 프로가 인기일 수 밖에 없다. 유명 셰프에서 일반인까지, TV 속 요리사들은 흔한 재료와 쉬운 레시피로 우리를 유혹한다.

언젠가부터 여행도 비슷해졌다. 
경험이 쌓인 여행자들은 사람들은 맛집 투어와 함께 쿠킹 스쿨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세계 5대 음식으로 유명한 태국은 일찍부터 먹방, 쿡방 여행지로 유명했다. 요리 수업도 가정집의 소박한 원 데이 클래스부터 유명 레스토랑의 전문 코스까지 다양해 취향껏 배울 수 있다.


▲ 팟타이를 만들며


사실, 수년 전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온 나는 태국 전통 음식을 배워보고픈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다시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기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다 방콕에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쿠킹스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고 어린이와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와 함께 떠난 방콕 여행, 태국 음식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던 리얼 쿠킹스쿨 체험기를 소개한다. 



타이 홀릭, 쿠킹 스쿨로


 바닥에 둥글게 둘러앉아 듣는 요리 수업. 영어로 진행된다. 

우리 가족은 타이 홀릭이다. 특히 태국 음식을 사랑한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태국 음식을 자주 접한 아이들은 달고, 시고, 때로는 매운 태국 음식을 좋아한다. 쿠킹 스쿨에 큰 아이와 함께 등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이 때문이었다. 


알아보니 방콕에는 유명한 쿠킹 스쿨이 세 곳 정도 있었다. 모두 셰프와 함께 시장을 돌아보고 반나절에 4~6가지 요리를 실습하는 것이 기본 코스. 나는 아이와 함께 캐주얼하게 참여할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인 실롬 타이 쿠킹스쿨(Silom Thai Cooking School)을 예약했다. 


 색색의 채소와 과일,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조리도구가 아름답다. 도구는 1인 1세트를 사용한다.


쿠킹스쿨에 도착하니 사용할 식재료와 도구가 아름답게 세팅되어 있었다. 수강생은 미국 커플, 호주 커플, 친구끼리 온 한국인, 그리고 아이와 나, 총 8명이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유쾌한 셰프의 주재로 우리는 바닥에 둥글게 둘러앉아 가장 좋아하는 태국 음식을 밝히는 등 각자 소개를 했다.  저녁 수업인지라 시장 보기는 건너뛰고, 대신 요리를 하며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 만들 음식은 가장 대중적인 태국 음식으로 '똠양꿍과 팟타이, 태국 북부식 치킨 샐러드와 망고 찰밥', 총 다섯 가지 메뉴다.  



태국 요리의 기본, 코코넛 밀크


 코코넛 밀크


첫 수업은 '코코넛 밀크' 만드는 방법부터 시작했다. 코코넛 밀크는 태국 음식의 기본 중 기본, 쓰이는 곳이 아주 많다. 걸쭉한 국물이 있는 음식에는 대부분 코코넛 밀크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코코넛 밀크는 코코넛 과육을 긁어 믹서에 곱게 간 후, 따뜻한 물을 부으면 생기는 국물이다. 손으로 주물주물 하면 하얀 국물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한 번 채에 거르면 코코넛 크림, 두 번 거르면 코코넛 밀크가 된다. 코코넛 크림과 밀크는 다른 종류가 아니라 농도의 차이인 것을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요즘은 직접 직접 코코넛 밀크를 만들기 보다 캔으로 된 시판 제품을 많이 사용한다고. 


 코코넛 밀크를 만드는 동안 셰프는 '두유 워너 빌드 어 스노맨~'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이는 이에 응답하듯 진짜 코코넛 과육 스노맨을 만들어 보였다는. ^^



중독성 있는 맛, 똠양꿍



 "갈랑갈, 레몬그라스, 레몬 잎, 이 세 가지가 빠지면 똠양꿍이 아니에요."


똠양꿍에 대한 내 첫 기억은 질기고, 향이 강한 건더기들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생강 맛이 나는 뭔가는 도저히 삼킬 수 없어 뱉어내고, 결국 다 먹기를 포기했다. 사람들 참, 식성도 이상하지. 대체 왜 이게 세계 3대 수프인 걸까? 


두 번째 똠양꿍을 시도했을 때, 나는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인스턴트 페이스트로 끓인 이 음식에는 버섯과 채소만이 들어있었던 것. 알고 보니 제대로 끓인 똠양꿍에는 먹는 재료와 먹지 않는 재료가 반 씩 들어간다. 월계수 잎같이 씹어도 잘 씹히지 않는 '레몬 잎', 나무껍질의 식감을 가진 '레몬그라스', 생강 향 진한 '갈랑갈'이 바로 똠양꿍의 향과 시원한 국물 맛 내는 '먹지 않는' 재료들. 


셰프는 이 세 가지만 들어가면 채소나 고기는 어떤 것을 넣어도 좋다고 했다. 태국어로 '똠'은 끓이다. '얌'은 섞다(보통 샐러드를 의미), '꿍'은 새우라는 뜻인데 꿍 대신 까이(닭), 무(돼지) 등을 넣으면 똠양 까이, 똠양 무로 부른다고 했다. 귀 버섯을 구하기 어려우면 양송이버섯을 넣어도 되고, 양배추나 양파를 추가해도 된다. 



 태국 음식에는 어떤 기름도 쓸 수 있지만 '올리브유, 참기름, 버터'는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셰프. 참기름은 향이 너무 강하고 나머지는 센 불에 요리해야 하는 태국 음식의 특성상 기름이 먼저 타버린다고. 모든 음식은 가장 센 불에 재빨리 볶아냈다.

 

 아이가 칼과 불을 사용해야 해서 엄마로서 무척 불안했으나 (아이와 2인 1조로 실습하겠다 요청했지만, 아이가 거부! ㅠㅠ) 다행히 낮은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고맙게도 보조 선생님이 내내 아이의 곁을 지켜 주셨다.


 아이가 직접 만들고 모양낸 똠양꿍


간단 똠양꿍 레시피

+ 재료: 새우, 레몬그라스, 레몬 잎, 갈랑갈, 피시소스, 레몬주스, 토마토, 쪽파, 타이 칠리 페이스트, 코코넛 밀크, 매운 고추  

1) 레몬그라스, 레몬 잎, 갈랑갈, 토마토를 한데 팬에 넣고 물을 한 컵 부은 후 끓인다. 

2) 재료가 어느 정도 익으면 새우를 넣어 익히고, 코코넛밀크, 레몬주스, 피시소스와 타이 칠리 페이스트를 넣는다.

4) 뜨거울 때 고수와 고추 등 가니시를 올려 서브.



가장 대중적인 태국 음식, 팟타이


 팟타이 재료, 팜슈거, 피시소스, 타마린드 소스, 계란, 쪽파 등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똠양꿍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음식은 팟타이가 아닐까 싶다. 배낭여행자들이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음식이자, 태국 요리 특유의 향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 태국 여행을 다녀오면 향수에 젖게 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팟타이 조리의 핵심은 '찬물'에 면을 10분 정도 불리는 것과 '계란을 먼저' 볶는 것이다.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 집에서도 자주 팟타이를 만들어 먹는데, 내가 만드는 팟타이는 늘 너무 풀어져 떡이 되곤 했다. 수업을 통해 알게된 원인은 잡채처럼 면을 더운물에 불리고, 라면처럼 계란을 마지막에 넣었기 때문. 팟타이를 요리할 때 마지막에 넣는 재료는 '면'이 되어야 한다. 

 

 (왼쪽) 계란을 얹은 닭은 실제로 불면 소리가 나는 휘슬이다. 아이가 몰래 불어봤다. (오른쪽) 팟타이에 쓰이는 노란색 팜 슈거. 아이는 달콤한 꿀 같다며 요리할 때 반만 넣고 반은 그냥 먹겠다고 했다. (그러나 셰프께서 돕는다며 프라이팬에 다 부어버리셨단...)


 팬에 재료를 볶을 때는 사각 국자의 끝을 이용해 살살 풀어주고, 5초간 그대로 두어야 한다. 너무 저으면 떡이 된다.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든 팟타이


간단 팟타이 레시피

+ 재료: 쌀국수 면, 식용유, 팜 슈거(설탕), 계란, 피시소스, 마늘, 새우, 두부, 쪽파, 타마린드 소스(식초), 숙주, 땅콩, 고춧가루 

1) 팬에 기름을 두르고 간 마늘, 계란, 새우, 두부, 쪽파를 순으로 넣고 재빨리 볶는다. 

2) 면을 넣고 팜 슈거, 피시소스, 타마린드 소스로 간을 해  숙주를 넣고 불을 끈다. 

3) 고춧가루, 땅콩 등을 곁들여 서브.



북부식 치킨 샐러드 (랍까이)



"채소가 아닌데 왜 샐러드에요?" 

랍까이 만드는 과정을 본 아이가 물었다. 나도 궁금했다. 태국에서는 차게 먹는 음식을 모두 샐러드라고 부르는 듯?!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음식도 샐러드라고 불렀다. 삶은 돼지 껍질과 구운 찰밥을 차고 맵게 무친 것이었는데. '무친 음식'을 모조리 샐러드라고 부르는 영어식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김치도 샐러드라고 부르지 않던가.


어쨌든 태국 북부지역인 이싼 지방 음식인 랍까이는 직접 만들지 않고, 셰프의 시연을 본 후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삶은 닭 가슴살에 양파와 민트 잎, 고추 등을 넣어 새콤달콤 매콤하게 무친 이 음식은 아이보다는 내 취향이었다. 채식주의자에겐 치킨 대신 새우 샐러드가 제공됐다.


셰프 왈, 태국인들은 평소에 팟타이나 똠양꿍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거리의 팟타이 가게는 모두 외국인을 겨냥한 것이라고. 더운 태국에서는 수시로 불을 쓰기 보다, 이런 샐러드 재료나 카레를 미리 만들어 놓고 쌀밥과 함께 주식으로 먹는단다. 



초록 고추가 듬뿍, 그린 카레


'게으름 피우면 결혼을 못한다는 속설'이 있는 태국 돌절구, 고추를 빻으며


태국의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에서는 카레를 판다. 우리로 치면 불고기 버거쯤 되는 것 같다. 

재밌는 건 맥도날드에서는 레드 카레를, KFC에서는 그린 카레를 판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셰프는 평소 직접 요리를 하기 보다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태국에서 맥도날드의 위상은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인데, 일단 가격 면에서 일반 음식점의 2배 정도이고, 쌀도 좋은 것을 쓴다고. 요리를 배우며 듣는 '진짜' 태국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인 그린 카레는 '고추'로 만든다. 

물론, 카레의 맛은 울금과 큐민 등으로 내지만 그린 카레의 색과 향을 내는 데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추가 필요하다. 


요리는 열 댓개의 고추를 잘게 잘라 찧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슈퍼에 가면 '그린 커리 페이스트'라는 것을 팔지만, 여기는 쿠킹 클래스가 아닌가. 수강생들이 각각 1분씩 돌아가며 열심히 돌절구를 찧었다. 셰프는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게으름 피우면 결혼을 못한다는 태국 속설'을 전하며 한바탕 웃었다. 

  


▲ 닭고기, 채소, 그린 카레 페이스트, 기름을 넣고 볶다가 코코넛 밀크를 넣고 잘 졸이면 된다.


▲ 고추를 듬뿍 넣었으나 그리 맵지 않은 그린 카레



즐거운 먹방, 포토 타임


▲ 요리사가 꿈인 아이, 신 나하는 모습에 내가 더 뿌듯했던 순간이다.


▲ 마지막 요리인 망고 찰밥은 찰밥 조리 과정만 설명하고 바로 시식에 들어갔다. 우리처럼 밥을 직접 끓이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찜판에 쌀을 올리고 김으로 찌는 방식이 독특했다. 


요리는 만들 때마다 시식을 했다. 평소에는 음식 하나로 한 끼를 먹는데, 다섯 개의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 마지막 요리를 할 때쯤에는 너무 배가 불렀다. 그래도 직접 만든 음식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더 많이 먹는 아이를 보니 무척 흐뭇했다.  


모두가 수다쟁이 딸아이를 무척 귀여워해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먹했는데, 네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난 후에는 서로 다녀온 여행지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많이 친해지기도 했다. 


센 불과 날카로운 칼을 직접 다루는 환경이라 엄마로서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셰프와 보조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와 아이를 위한 낮은 가스레인지, 발판과 오븐용 장갑 등이 있어 아이도 나도 즐겁게 요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맡기니 아이도 책임감을 느껴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더 재미있게 요리할 수 있을 듯. 



고작 한 번의 경험이지만, 나는 쿠킹스쿨에 다녀온 후로 태국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제는 제법 비슷한 맛이 나는 팟타이도 만들 줄 안다. 



[여행 Tip] 인기있는 방콕의 쿠킹클래스

- 실롬 타이 쿠킹스쿨(Silom Thai Cooking School) http://www.bangkokthaicooking.com

- 블루엘리펀트 레스토랑(Blue Elephant Restaurant) http://www.blueelephant.com/cooking-school

- 바이파이 쿠킹스쿨(Baipai Cooking School) http://www.baipai.com

★ 예약은 미리미리, 팟타이와 똠양꿍을 만드는 클래스가 가장 인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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