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봄꽃 축제를 추억하며

여의도는 조용한 섬이다. 평일에는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때를 제외하고는 거리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 국회와 언론사, 금융기관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는 매일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사들이 논의되지만, 빌딩 숲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이런 여의도에도 1년에 한 번,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즌이 있다. 바로 여의도 봄꽃 축제기간. 이맘때면 여의도에서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꽃망울을 보며 활기찬 도시를 만끽할 수 있다. 거리에는 솜사탕부터 어묵, 김밥까지 침샘을 자극하는 길거리 음식이 푸짐하고, 공연이나 전시 등 이벤트도 많이 열려 번화가가 부럽지 않다. 저녁 햇살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벚나무,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이는 밤 벚꽃은 직장인들의 퇴근길을 즐겁게 한다.

▲ 몽글몽글 피어나는 올해 여의도 벚꽃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 여의도 봄꽃 축제. 원래 벚꽃은 봄꽃 축제 기간 끝날 즈음에 만개하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부쩍 따뜻해진 기온 덕에 축제기간에 맞춰 제대로 피어난 벚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기고 글을 쓰기 위한 취재였기 때문에 축제 시작날에 맞춰 아침에 애들을 보내놓고 부랴부랴 다녀왔는데, 의외로 만개한 나무들이 꽤 있었단.



서울의 대표 벚꽃 명소, 여의서로


▲ 봄꽃 축제 기간, 차 없는 거리인 여의서로

여의도의 봄꽃 축제는 국회의사당 뒷길에서 시작된다. '여의서로'라 불리는 이곳은 1.7km에 달하는 도로 양옆에 1,600여 그루의 왕벚나무가 있어 서울의 대표 벚꽃 명소로 불린다. 축제 동안 차량 통행을 막아 안전하게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요즘에는 한류의 영향 때문인지 이곳에서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여의도를 찾았던 평일 오전에는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다국적 관광객이 많았다. 말레이시아 국적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취항의 영향인지 몇 년 전부터 주요 관광지에서 특히 말레이시안 관광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뚜(하나), 두아(둘), 김치~!"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흐드러진 벚꽃 아래 김치를 외치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나쁘지 않아보였다.


여의도 봄꽃 축제에는 각종 이벤트가 빠질 수 없다. 올해는 남녀노소 참여할 수 있는 노래자랑, 거리예술공연, 애니메이션 캐릭터 퍼레이드, 지역 예술동호회와 관계기관의 공연, 백일장 등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주말에는 존박, 조정치, 정인, 에릭남, 10cm 등의 무대가 꾸며졌다고. 조금 더 따뜻해지면 저녁에도 애들 데리고 공연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강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풍경



여의서로에 꽃구경 인파가 너무 많아 조금 덜 복잡한 곳을 찾는다면 축제가 시작되는 서강대교 남단(순복음 교회) 건널목을 건너 한강변을 따라 마포대교(여의나루역)까지 1Km 남짓 이어지는 벚꽃 길을 걸어봐도 좋다.



여의서로보다 더 양지바른 이 길의 꽃은 벌써 만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서강대교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이른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황사 없이 맑은 푸른 하늘에 탁 트인 강변을 따라 하얗게 피어난 벚꽃이 황홀했다. 고층빌딩이 가득한 여의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의도 공원, 꽃그늘 아래 도시락 소풍을



여의도의 꽃 잔치는 여의도 공원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내 젊은 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여의도공원은 언제고 찾을 때마다 센치한 기분이 든다.




벚꽃이 주를 이루는 한강변과는 달리, 여의도 공원에서는 목련,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철쭉, 조팝나무 등 다양한 봄꽃을 볼 수 있다. 원래 목련과 산수유부터 시차를 두고 피어야 하는데,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모든 꽃이 한꺼번에 개화했다.


점심 때가 되니 새싹이 돋아난 수양버들 아래 도시락 든 직장인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여의도 공원에는 피크닉 테이블과 정자가 있어 도시락 소풍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다. 자연생태의 숲, 문화의 마당, 한국 전통의 숲, 잔디마당으로 구분되는 공원은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벚꽃 나들이를 겸해 한 바퀴 둘러볼 만하다. 자전거도 빌릴 수 있어 가족,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더없이 좋다. 




여의도 벚꽃 개화 정도는 어떻게 측정하는 걸까?

▲ 해가 잘 드는 길목의 여의도 벚나무


20도를 웃도는 완연한 봄 날씨가 이어지면서 여의도에도 이른 봄꽃이 만개했다. 그러나 양지바른 곳에 있는 벚꽃이 만개했는데도 공식 개화로 기록되지는 않는 경우가 있다. 지역마다 공식 개화의 기준이 되는 나무가 따로 있기 때문. 이 나무를 '관측 표준목이라고 한다.



여의서로를 걷다 보면 '이 나무는 여의도 동-서로 벚꽃 군락지의 왕벚나무 평균 개화 시기를 관측하기 위해 영등포 구청과 기상청이 관측 표준목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입니다'라는 안내가 쓰여있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여의도의 벚꽃 개화 시기는 나무에 둘린 띠 번호가 118, 119, 120번인 벚나무로 측정한다고 한다. 이 세 그루의 나무 주요 가지마다 3송이 이상의 벚꽃이 활짝 피었을 때를 벚꽃 개화일로 본다고. 국회의사당 동문 앞, 여의도 수난 구조대 근처에서 이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 꽃 구경을 하다가 한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 여의도 봄꽃 축제 시작일의 관측 표준목. 개화를 했지만 아직 터지지 않은 꽃망울이 더 많아 보인다.


비록 취재를 통해서였지만 모처럼 황사없이 맑은 날, 벚꽃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했던 하루였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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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CNS 블로그에 기고한 글을 주관적 입장으로 조금 다르게 구성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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