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의 섬, 꼬따오로 떠난 23박 24일 태국여행 스케치

우리가 따오 섬으로 떠난 건 순전히 '에어아시아 프로모션' 때문이었다. 

올 6월부터 인천-방콕간 노선을 취항한 에어아시아가 5월에 반짝 특가 항공권을 내놓았던 것~! 


휴가 피크 시즌인 7월 중순 출발 항공권 가격이 인당 20만원 정도라니.
1년이라는 시간을 확보한 후, 호시탐탐 여행갈 기회만 노리는 요즘의 우리에게 
이건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나흘 후면 떠날 스페인 여행 계획으로 온통 머릿 속이 복잡했지만, 손은 이미 동물적인 감각으로 결재버튼으로 누르고 있었다.


▲ 꼬 따오, 싸이리 비치 풍경


가만, 태국 장기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8년 전, 여름휴가로 떠났다가 첫눈에 반했던 작은 섬, '꼬따오'가 떠올랐다. 방콕과의 거리는 750Km 정도로 멀고 오가는 길이 험하지만, 불편한만큼 자연에 다가설 수 있는 건 언제나 여행의 진리 아니던가. 꼬따오는 수중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다이버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체험다이빙으로 이곳의 바닷 속 세상을 본 후, 언젠가 꼭 다시 와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리라고 다짐했는데, 지금이 그 기회였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

섬 자체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일 것이 분명했다. 숙소에서 몇발자국만 나가면 바로 산호와 물고기가 있는 천연 풀장이고, 좁은 곳이라 섬 사람들과 친해져 아이들이 안정을 찾는데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오랜 기억이지만 입맛에 잘 맞는 음식점도 있었고. 그런데, '교육기간 동안 애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번갈아 교육을 받는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다행히 리조트에는 8년 전 체험다이빙으로 인연이 된 강사님이 코리아팀 대표강사로 계셨고, 문의 끝에 베이비 시터를 쓰면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방콕으로~! 태국 미녀가 된 진아


▲ 초저가 에어아시아 국제선 라인. 신형기에 좌석이 넉넉해 아이들에겐 비즈니스석 부럽지 않았다. 


결국,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만에 다시 태국으로 떠났다. 기간은 7/21-8/13(23박 24일). 
딱히 정해둔 스케줄은 없었다. 그러나 목표 하나는 확실했다. 다이버가 되는 것. 

방콕에서 아이들과 며칠간 적응 시간을 갖고, 야간기차와 버스, 배, 다시 셔틀툭툭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꼬따오로 이동하기로 했다.


 헬로우 태국~! 방콕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본 짜오프라야 강


 키자니아로 향하는 진아의 신난 발걸음

방콕에서 맞은 첫 아침은 진아의 생일이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미역과 간장으로 간단한 미역국을 끓이고, 한창 역할놀이에 빠져있는 진아가 좋아할만한 '키자니아'로 온 가족이 출동했다. 키자니아는 소방관, 비행기 조종사, 의사 등 여러가지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놀이 학교다. 서울에도 체인이 있지만, 방콕점은 아시아의 허브답게 다국적 아이들이 모여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생일을 맞아 키자니아에서 태국 미녀 등극?! 


여러 체험을 해볼 수 있었지만 진아는 특히 '패션모델 체험'에 즐거워했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한시간 쯤 밖에서 기다렸더니 사진처럼 태국 미녀로 재탄생했다. 눈두덩이를 짙게 칠한 태국식 스모키 화장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 진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화장을 지우지 않았다.ㅎ  



다이버의 섬, 꼬따오로


 산넘고 물건너 바다 건너서~ 방콕에서 750Km 떨어진 꼬따오로.


능, 썽, 뜨레스. 진아가 태국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숫자를 세기 시작할 무렵, 우리가 태국의 기후, 음식 등에 점차 익숙해질 때 즈음 따오 섬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와 버스, 배를 타고 꼬 따오까지 가는 길은 예상대로 험난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도록 침대칸이 있는 야간기차를 예약했지만, 이동시간이 10시간 이상 길어지니 힘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덜컹거리는 기차에서도 한번 깨지 않고 잘 잤다. 스티브와 나도 오랜만에 배낭여행의 낭만을 느끼며 추억에 잠겼던 시간이었다.


 무려 12시간의 밤샘 이동 끝에 만난 꼬따오 매핫 선착장. 



꼬 따오에서 보낸 13일, 다이버가 되다


▲ 오픈워터 교육을 담당했던 반스 다이빙 리조트 코리아팀의 훈남, 훈강사님. ^^  

섬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론 수업이 이어졌다. 밤새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아이들이 잘 자는지, 기차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난 스페인 여행의 기억으로 기차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듯. --; ) 살피느라 잠을 설쳤더니 비디오 교육의 영상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론 교육을 받는 동안, 효자 정균이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진아는 오랜만에 아이패드에 담아온 구름빵 애니메이션을 원 없이 봤다.     


▲ 오픈워터,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과정 개방수역 교육 (photo by 훈강사님)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어진 실기수업. 총 나흘간의 교육으로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시 이틀을 더 해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다이버가 되었다. 나는 코로 물을 1.5리터는 족히 마시고 스티브는 코피를 몇 번 쏟았지만, 드디어 오랜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웠다. 솔직히 교육 초반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은 포기할 수 없었다. 


물속에서 심장이 터질 듯, 숨이 차오르던 순간에 호흡을 안정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들, 포기하고 싶던 순간에 '잘 했어요모든 건 심리적인 문제'라고 쓴 강사님의 보드를 봤을 때 울컥했던 기억, 바닥에 처음 무릎을 디디고 말미잘 사이로 놀리듯 오가는 니모와 바라쿠다 떼를 가까이 봤을 때의 희열, 바위 밑이나 난파선 속에서 내 몸만한 참치를 봤을 때의 감동, 그리고 8년 만에 재회한 강사님과 함께 나이트 다이빙을 하며 별보다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플랑크톤을 봤을때의 그 환상적인 순간~!


이 모든 것이 다이빙을 배우지 않았다면 평생 상상도 못했을 경험이었다.  

▲ 동기들과. 교육을 마치고. Yeah~ (photo by 훈강사님)


▲ 베이비 시터, 아리엔과 아이들. 언어의 장벽은 별로 높지 않아보였다. 오른쪽 사진은 그녀와 진아가 노는 법. 진아가 한국어를 가르쳤단다. ^^ 아리엔은 예쁘기도 하지만, 선한 인상만큼이나 아이들과 잘 놀아줘서, 진아는 요즘에도 종종 안부를 묻곤 한다. 그녀는 내년 이맘때쯤 한국 친구네 집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페친이 되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있었을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인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베이비 시터를 선택했다.

다이버들끼리 서로 아이들을 봐주는 게 이 섬에서는 흔하다는 강사님의 추천이 있기도 했고, 직접 알아봐주셨기에, 그리고 딱히 대안이 없었기에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당연히 태국인일줄 알았던 시터는 놀랍게도 독일인이었다. 장기체류중이라고 했는데, 독일 뿐 아니라 태국에서도 다국적 아이들을 돌봤던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 왼쪽에서부터 '다이빙은 우아~하게'를 강조하셨던 김강사님. 쉽지 않았던 우리의 오픈워터 코스를 담당했던 훈강사님, 그리고 진아가 무척 따랐던 재주 많은 수마스터님. ^^


하루에 다섯 시간씩 독일인 시터가 아이들과 함께 했고, 수업이 길어지면 다이브 마스터 과정을 하고 있는 한국인 교육생이나 시간이 비는 강사 중 한 명이 바톤을 이어받아 교육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을 봐주셨다. 일단 내가 물에 들어가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기에,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항상 뭍에 있는 강사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셨다. 아이들은 다행히 독일인 시터와 강사들을 무척 좋아했고, 잘 따랐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내가 다이버가 될 수 있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인연들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꼬따오에서의 일상


▲ 반스 다이빙 리조트 해변 식당에서 바라본 싸이리 비치

 

다이빙을 하지 않을 때, 꼬따오에서의 우리의 일상은 이랬다. 
침에는 리조트의 해변 레스토랑에 앉아 애그스크램블과 토스트, 커피로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싸이리 비치에서 모래놀이를 하거나


▲ 꼬낭유안 섬


보트를 타고 근처 섬으로 가서 스노클링과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를 마치고는 비치로드를 걸으며 망고주스를 마시거나 쇼핑을 하고,



섬에서 산 스노클로 진아의 첫 스노클링을 시작하기도 했다. 


▲ 싸이리 비치로드


매일 오가던 이 길에는 진아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정 많고 친절했던 꼬 따오 섬 사람들. 


▲ 리조트 앞 맛집, 빙고(Bingo). 강추메뉴, 새우튀김과 똠양꿍



저녁에는 늘 평상이 삼각 쿠션에 기대 저렴하고 맛있는 태국 음식과 맥주를 한잔~ 이렇게 종일을 있어도 좋은 곳이었다.


▲ 빙고 식당에서 바라본 꼬따오의 감동적인 노을



다시 도시로, 방콕 새로보기


▲ 진아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던 '왕궁'. 패키지 코스라며 등한시했는데, 무려 11년 만에 찾은 왕궁은 정말 멋졌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높은 섬 물가도 있고 더 가보고 싶은 곳, 사고싶은 것도 있어 귀국 일주일 전에 다시 방콕으로 돌아왔다. 방콕은 올 때마다 새롭다. 눈 깜짝할 사이 생기고 사라지는 가게들, 빠르게 변하는 트랜드가 정말 놀라웠다.


 맛본 이들은 누구나 그리워 할 ‪카오산로드 팟타이


물론, 왕궁이나 카오산로드의 팟타이처럼 변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1년만에 찾은 방콕의 중심가에는 대형 쇼핑몰이 두 개나 새로 생기고, 리뉴얼 됐다. 맛집으로 이름난 가게들의 분점 몇 개가 순식간에 퍼져 있었고,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패션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바이욕 스카이 호텔의 뷔페 대신 왓아룬 전망의 강변 레스토랑, 야경이 좋은 칵테일 바, 에프터눈 티 같은 것들이 방콕 여행의 키워드가 되고 있고, 연유가 들어간 커피 대신 대만식 공차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방콕 쇼핑의 메카, 관광의 중심, 시암 파라곤 


 24일 태국 여행의 마지막 숙소에서 찍은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마지막은 늘 아쉽다.


그래도. 아무리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내가 번 돈으로 첫 배낭여행을 떠났던 방콕은 여전히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 왕비의 생일이자 어머니 날을 맞아(?) 왕은 아직 건강하단다. 2014년,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스티브와 얘기했다. 

이제 남은 건 '서핑(Surfing)' 뿐이라며. 다음 여행지는 발리의 꾸따비치가 되어야 하는 거냐며...


며칠 후, 스티브는 문화센터 수영 클래스에 등록했다. 

며칠 후, 스티브는 보트 조종 학원에 등록해 2급 조종 자격증을 땄다.

요즘 스티브는 1급 조종 자격증을 공부중이다. 

요즘 양가 가족들은 우리가 섬으로 내려가 낚시 배를 몰며 전복을 딸 건지 궁금해 한다.


이제 갓 초보 다이버, 초보 조종사가 된 우리가 뭘 할 수 있으랴~

그래도, 인생의 즐거움이, 함께하는 행복함이 이런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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