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면세점과 요우커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 신청 마감(6/1)을 앞두고, 어떤 기업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낼 것인지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내수부진으로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기존 유통망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반면, 중국인 관광객(이하 요우커) 특수로 면세점 사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어 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것. 특히 대기업 몫으로 할당된 2곳은 지난 1990년 이후 15년 만의 기회라 '쟁탈전'이라고 불릴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까지 입찰 참여의사를 밝힌 대기업은 롯데면세점, 이랜드,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모두투어 등 합작법인, 현대산업-호텔신라 합작법인, SK네트웍스(워커힐), 한화(갤러리아) 등 7곳. 지역도 동대문, 용산, 여의도, 강남, 홍대 앞 등 다양하다. 결과는 7월중 발표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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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웬 '면세점 사업' ?


매일 '여행'이나 '애들' 이야기만 하던 내가, 왜 갑자기 면세점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관련 주식을 가지고 있어서? 근처에 뭐라도 하나 차려보려고? ㅎㅎ


▲ 합정동 도로에 불법 주차된 대형 관광버스


요즘 내가 매일 아이의 등하교길에 만나는 풍경이다. 

3년 전쯤, 이 길에서 처음 '여행사'로고가 찍힌 대형 관광버스를 봤을 때는 그저 어느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 버스들은 그때도, 어제도, 오늘도 이 길에 서있다. 

왜일까?


며칠 후, 같은 장소, 비슷한 버스들에서 중국인 한 무리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얼추 30명 정도 되는 단체 관광객인 것 같았다. 이들이 줄지어 향한 곳은 한 화장품 판매점'언제부터 여기에 화장품 가게가 있었지?' 평소 인적이 드문 곳이라 번화가에나 있을법한 화장품가게가, 이렇게 큰 규모로 들어섰다는 것에 놀랐다. 호기심에 기웃기웃 내부를 살펴봤더니 매장 안에는 6~7명의 직원이 있었고, 진열된 제품은 주로 저가 화장품이었다. 한쪽에는 사은품으로 보이는 기내용 캐리어도 잔뜩 쌓여 있었다. 걸음을 매장 안으로 옮기려는 찰나, 그때였다. 중국어로 물건을 팔던 한 직원이 소리쳤다. "한국인은 들어올 수 없어요. 나가세요!" 알고보니 이곳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 면세점이었던 것. 잠시 후, 매장에서 나온 중국인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자 바로 2대의 버스가 그 자리를 채웠다.



우리 동네에는 몇 개의 면세점이 있을까?


▲ 네이버 지도로 조회해 본 면세점 천국, 마포구

        

그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길을 잘못들어 차를 몰고 서교동으로 접어들었는데, 대형 버스들이 줄줄이 내 앞을 막고 있었다. 주차된 것까지 합하면 지나는 길에 비슷한 여행사 전세버스를 20대는 족히 본 것 같다. 주변에는 역시나 중국인 대상으로 보이는 각종 면세점과 음식점이 있었고, 오전 9시 즈음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마포구에는 무려 13개의 면세점이 있었다. 

뭐?? 13개...? 


서울 시내가 아니라 마포구에만 있는 면세점의 숫자다. 지도를 보면 이 면세점들은 번화가인 홍대 입구에서 살짝 벗어난 망원, 서교, 성산동 일대에에 분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소규모로 화장품이나 홍삼 등 특정 제품을 주로 판매하고, 중국 단체 관광객만을 손님으로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학교나 어린이집 근처에 서있던 관광버스들, 한적하던 서교동 길이 막히는 이유, 조용한 이 동네 골목골목에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상황이 모두 설명이 된다.


▶ 관련 기사 : [요우커 노믹스 왕서방을 잡아라] 홍통거리 점령한 요우커…면세점 북새통



홍대 앞에 면세점이 난립하는 이유


▲ 오전 10시, 홍대 앞 거리풍경


그런데, 홍대 앞에는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면세점이 생겼을까?


첫째, 공항이 가깝다. 

홍대 앞은 해외 관광객이 선호하는 지역 중에서 김포공항, 인천공항에서 모두 가깝다. 혼잡한 시내를 벗어나 있으면서 강변북로가 지척이라 쉽게 공항에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홍대입구역은 공항철도도 지난다.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하는 여행 마지막 날, 귀국 쇼핑을 위한 마지막 코스로 좋다는 뜻이다.  


둘째, 볼 거리가 많다. 

면세점 쇼핑 외에도 가까운 홍대 일대에는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왔던 카페, ‘신사의 품격’에 나왔던 놀이터 등 유명 드라마의 촬영지와 연예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스타제국 등 요우커들이 열광하는 한류와 관계된 장소들이 많다. 놀이터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이나 길거리 공연, 독특한 카페 등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셋째, 대형관광버스 주차가 쉽다. 

홍대 앞에서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번화가가 아닌 합정, 망원, 성산동 일대는 차량 통행이 적어 갓길 주차가 쉽고, 단체 관광객이 타고 내리기 좋다. 연남동도 멀지 않아 중식으로 식사를 하기에도 좋다. 


마지막으로, 면세점 차리기가 어렵지 않다. 

면세점은 관세청의 특허를 받은 업체만이 운영할 수 있는 특수 업종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후면세제도'라는 것이 있어 차리기가 어렵지 않다. 사후면세제도란 '외국인 관광객이 지정된 판매점에서 3만원 이상의 면세 물품을 구입하고 출국시 공항에서 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를 환급받는 제도'다. 이름은 '사후면세'이지만 사실은 '세금환급(Tax Refund)'인 셈. 이 사후면세품 지정 판매점이 되기 위해서는 관할 세무서에 지정 신청서와 사업자 등록증을 제출하면 되니 입찰이나 경쟁없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때문에 마포구에는 무려 13개나 되는 가짜 면세점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면세점은 전국적으로 5,400여개에 이른다고. OMG....! 


▶ 관련 기사 : 바가지 관광 한국 ··· '짝퉁면세점' 기승



요우커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


▲ 학교 앞으로 대형버스들이 수시로 오간다.


▲ 합정 사거리 메세나 폴리스 근처에는 늘 5~6대의 버스가 진을 치고 있다. 


동네가 면세점 지역이 된다는 건 이 지역에 사는, 혹은 이지역을 자주 찾는, 혹은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글을 쓰기 전, 페이스북에 '홍대앞 면세점 실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오가면서 종종 궁금했던 부분인데, 적어주신다니 기대 되네요.', 

'자이갤러리 철거하고 있던데 그 자리에 면세점 들어오는거죠 ?'

'가뜩이나 전세버스 불법주차땜에 스트레스 받는중인데 ㅠㅠ'


같은 댓글의견이 달렸다. 정확히, 내가 이 동네에 살며 느꼈던 부분이다. 

처음엔 그냥 이상했고, 다음엔 궁금했고, 그리고 스트레스 받았다. 이제는... 위협을 느끼는 중이다. 


▲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도로뿐 아니라 횡단보도와 경사로마저 점거하고 있다. 유모차나 자전거로 이 길을 건널 수 있을까?


대형버스가 불법주차된 길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 좁은 2차로뿐 아니라 대로변 시내버스 정류장 근처에도 관광버스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탄 아이가 주차된 차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아이를 등교시키며 잠시 정차할 공간을 찾지 못해 헤맸고, 어떤 골목은 빠져나올 때마다 늘 두 차선을 건너 도로에 진입을 해야했다. 횡단보도를 도보로 건널 때도 한 차선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야 했다. 그저 혼잡한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안전문제를 야기한다. 


색 있는 카페나 문화공간이 많았던 홍대 일대는 점점 더 쇼핑센터로 변하고 있다. 유명했던 카페나 음식점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이건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요우커들이 몰려들며 홍대 일대가 '명동화'되면서 지역의 고유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가속화 하는 것은 물론, 주민의 생존권, 미래의 관광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인 투자가들이 땅값을 올리고 있다. 중국 관광객의 다수가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여행사, 면세점 등을 이용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이 때문에 홍대 일대 중국인과 화교 큰손들의 부동산 취득이 늘고 있다. 비싼 월세를 내느니 아예 건물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릿세만 올릴 뿐 상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한 기업이 제시한 홍대 상권 면세점 부지 (via 네이버 지도) 


최근,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모 그룹에서 '홍대 상권'을 면세점 후보지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기업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면, 제안하는 대로 주변 홍대 상권과 시너지를 내 서부권 최고의 관광문화 스트리트를 만들 수 수 있을까? 작게는 일대의 '가짜' 면세점들과 파생되는 문제들이라도 좀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가뜩이나 번잡한 이 동네가 더욱 혼란스러워질까? 


부쩍 옛날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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