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다이버 바다거북을 만나다, 사이판 라우라우 비치 다이빙

남편과 나는 스린이(스쿠버 다이빙 어린이)다. 


5년 전, '해변의 찌질이' 탈출을 선포하며 태국에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지만, 
이후 아이들과 함께라는 이유로 다이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나는 어쩌다 출장 중에, 혹은 여행중 아이들을 맡기고 한 번씩 다녀온 것이 전부다.
남편은 5년 전 자격증 코스를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 


※ 관련 글: 다이버의 섬, 꼬따오로 떠난 23박 24일 태국여행 스케치


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잊지 않는다고 했던가? 가끔 다이빙 한 나보다 안정적인 스티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두 장롱 다이버가 매년 잠수풀에서 리뷰 다이빙을 해왔다는 것.

1년에 한 번 운전대를 잡으면 모든 것이 어색한 것처럼 우리는 매번 장비 체결 방법을 헛갈리고 웨이트를 얼마나 차야 하는지 고민한다. 5m 밖에 안되는 깊이라도 물속에서 패닉이 올까 두렵다. 

그러나 일단 입수해 의식적으로 천천히 호흡을 하다 보면 느린 호흡만큼 마음도 평온해진다.

사이판 여행을 한 주 앞둔 토요일, 부부는 의식처럼 수영장 리뷰를 다녀왔다. 



부푼 두려움을 안고, 사이판 라우라우 비치로


사이판 여행 첫 아침, 다이빙 투어가 예정된 날이 밝았다. 밤새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려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났다. 가뜩이나 두근거리는 아침인데 밤새 파도와 조류가 세졌을까 봐, 바다가 뒤집혔을까 봐 걱정이 됐다.


긴장한 탓인지 속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밥은 먹어둬야 할 것 같아 죽과 찌개로 간신히 한술 떴다. 조식 뷔페에 한식 메뉴가 있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픽업 차를 타고 사이판 라우라우 비치로 향하는 길. 

막상 차에 올라 다이빙을 함께 할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라우라우 비치 (Laulau Beach) 는 사이판 동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만으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곳이라고.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지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먹구름을 걷어내고 이내 푸른 빛을 드러냈다. 


라우라우 비치의 첫 인상


30분 남짓 지났을까? 아슬아슬한 비포장 비탈길을 달려 도착한 라우라우 비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미세먼지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맑은 하늘과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야자나무에 돋아난 여린 잎까지, 인적없는 해변은 마치 무인도 같았다. 


두려움도 잠시, 맑게 갠 하늘과 잔잔한 해변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여전히 헛갈리는 장비 체결, 그리고 첫 다이빙 

공기통과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싣고 라우라우 비치에 도착

사이판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 생각한 포인트는 '사이판 그로토(Grotto)'였다. 신비로운 푸른 빛이 연기처럼 피어나는 해식동굴에서 멋지게 다이빙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심 20m 깊이 그로토 스팟은 조류가 세 초보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 파도가 세지는 겨울에는 위험하다고 했다.   


다이빙 샵에서는 '라우라우 비치'를 추천했다. 찾아보니 체험 다이빙과 자격증 교육을 많이 하는 곳이라 오랜만에 다이빙하는 우리에게도 적절한 연습 코스였다. 바닥에 산호 군락이 있어 볼거리도 많고, 운이 좋으면 정어리 떼나 거북이, 상어 등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조류가 있으니 줄을 잡고 하강할 거에요.' 코스 설명 중인 DIVE Y2K 강사님 

이번 다이빙은 샵에서 오픈워터 교육을 받는 6명의 학생과 함께 하게 되었다. 

다이빙 자격증은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오픈워터,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레스큐, 다이브 마스터, 인스트럭터 순으로 나뉜다. 우리는 명색이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자격증 보유자! 스스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교육생들과 함께라 리뷰 교육을 받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장비를 꾸리고, 라우라우 비치 코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후, 배를 탔... 

아니, 해변을 향해 걸었다. 


젊고 힘 좋은 교육생들은 저만치 멀어져 가고... 후미에서 고전 중인 40대 장롱 여러분


그랬다. 라우라우 비치는 50~60m 정도 해변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포인트다. 몸에 꼭맞는 수트를 입고, 주렁주렁 호흡기가 달린 무거운 공기통을 메고 무릎 깊이의 해변을 어느 정도 수심이 나올 때까지 걸어 가야 한다. 바닥은 돌과 죽은 산호들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게 중심도 잘 잡아야 한다. 이날 따라 고프로는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운지. (그렇게 입수지점에 도착했는데, 뭐라도 놓고 온 게 생각난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ㅠㅠ) 


힘들긴 했지만, 비치 다이빙은 초보자에겐 보트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심리적 부담이 적은 장점이 있다. 완만하게 이어진 해변을 따라 16~17m까지 입수하므로 수심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다이빙할 수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태평양 전쟁의 흔적, 일본군이 설치한 송유관을 따라 입수

라우라우 비치에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설치해 놓은 송유관이 남아있다. 

현재는 녹슨 송유관 위에 각종 산호가 피어나 독특한 볼거리가 되고 있다.


꽃처럼 피어나는 연산호

다이빙 포인트는 송유관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뉜다. 첫 다이빙은 오른쪽 포인트로 모래 자갈 바닥에 산호 군락이 형성된 지역. 경산호가 대부분이지만 막 피어나는 연산호와 담셀피쉬, 각종 버터플라이 피쉬, 트리거 피쉬, 그루퍼 등을 볼 수 있었다.


친절한 스티브, 거북이를 찾아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수중에 부유물이 좀 있었다. 그래도 사이판이라 기본 15m 정도는 나오는 듯. 정신없이 이것저것 찍고 있는데, 갑자기 스티브가 손짓한다. 


뭐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웬 거북이가!!



새끼 거북이 한 마리가 수초를 뜯어 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게 신기해 한참을 바라봤다. 알고 보니 이 동네에서 '개북이 = 애완 거북이'로 유명한 아이. 수초를 던져 주면 받아먹기도 한다고. (미리 알았다면 한번 해보는 건데!)


그동안 나는 거북이와 인연이 없었는지 다른 거북이 포인트에서 다이빙할 때는 멀리 헤엄치는 모습만 봤고, 거북이 둥지까지 파악한 터키의 카쉬에서도 그림자 조차 보지 못했다. 간절히 바라기만 하다가 드디어 사이판에서 소원 성취! ㅠㅠ 이날 나는 두 번의 다이빙에서 크고 작은 3마리의 거북이를 봤다는. 



신기한 마음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며 거북이를 찍고 있는데 갑자기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남편.

"ㅎㅎㅎ 네네~ 찍어드리지요."

이렇게 스티브는 인생샷을 남겼다고 한다.



첫 다이빙에서 새끼 거북이도 봤겠다. 물속 유영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겠다. 

출수 후 휴식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두 번째 다이빙, 노랑 니모를 만나다  

산호초 사이로 유영하는 재미가 있는 라우라우 비치 포인트

사이판 특유의 푸른 물빛, 암석과 산호, 물고기들이 만드는 신비로운 풍경


두 번째 다이빙은 송유관을 중심으로 왼쪽 포인트로 웅장한 암석 위에 아름답게 자라난 산호초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몸을 낮춰 산호초 사이로 유영하며 숨은 물고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던 곳. 앞서가던 교육생들이 핀으로 모래 바람을 일으킨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인상적이었던 노랑 니모. 크기도 제법 컸다.

이 포인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니모로 불리는 오렌지 아네모네 피쉬였다. 주황색 니모만 보다가 노란 빛을 띄는 니모를 보니 새로웠다. 손바닥만 한 것이 크기도 제법 컸다. 가까이 가면 말미잘 속에 숨거나 정면으로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격성이 있어 물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무중력 상태를 즐기며

두 번째 다이빙에서는 남편의 모습을 좀 더 담아봤다. 비염이 있어 이퀄라이징(압력 평형, 귀 뚫기)이 잘 안되는 그는 비행기를 탈 때도, 다이빙할 때도 늘 고생이다. 그런데도 여행과 물을 좋아하기에 늘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여행을 통해 감이 좀 생긴 것 같다고 한다. 역시 즐기는 자는 당할 수 없다는 진리.


함께 셀카를 찍어보기도 했다. 


이번엔 할아버지 거북이가 나타났다.

출수하는 길에 다시 거북이를 만났다. 자세히 보니 아까 그 새끼 거북이는 아니었다. 송유관 밑에 있길래 내려가서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남편 탱크에 공기가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올라왔다. 거북이는 충분히 본 것 같아 아쉽진 않았다.  



두려움은 잠시뿐, 다음 다이빙 여행을 기약하며

힘들지만 뿌듯한 출수. 시계를 보니 12시 11분, 해가 중천이다. 

두 번의 비치 다이빙 후 완전히 체력을 소진했다. 시야가 좀 아쉬웠지만, 새로운 곳을 탐색하며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기대했던 전갱이 떼를 못 만나서 조금 서운하긴 했다. 찾아보니 원래 4~6월이 철이라고.


물에 익숙해질 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이빙은 100번 정도 로그를 쌓아야 어느 정도 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데 그날은 언제쯤 오려나 싶다. ㅎ



두려움은 잠시뿐, 우리 부부를 다시 다이빙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사이판 라우라우 비치.

비치 다이빙이지만 거북이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좋았고, 날씨에 관계없이 사철 다이빙을 할 수 있는 포인트라 언제든 접근 가능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초보나 장롱 다이버가 편안하게 스쿠버 다이빙을 연습하기 좋은 곳이라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이제 감을 좀 잡았으니, 다음에는 사이판 그로토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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