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에서 즐기는 원조 하카다 라멘, 이치란(一蘭)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음식엔 뭐가 있을까요? 명란 라멘인 카라시 멘타이코, 곱창 전골인 모츠나베, 포장마차 음식의 대명사 우동 등 일본에서도 후쿠오카에는 유독 유명한 음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후쿠오카라는 지명을 들었을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돈고츠 라멘인 '하카다 라멘'이죠. '후쿠오카 = 하카다'라는 이름을 따 지역을 대표하는 하카다 라멘은 삿포로의 미소 라멘, 도쿄의 쇼유 라멘과 함께 일본의 3대 라멘으로 손꼽힌다고 하는데요. 후쿠오카 여행중이라면 한번 먹어보지 않을 수 없겠죠?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하카다 라멘

하카다 라멘은 날이 어둑어둑 해질때쯤 나카스 지역 강가에 늘어선 포장마차 야타이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저녁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둔 맛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치란(一蘭) 내부

이곳은 한때 우리나라 TV에 '혼자서도 갈 수 있는 라멘집', 일명 '독서실 라멘'으로 소개되어 이슈가 되었던 이치란(一蘭) 입니다. 어두침침한 조명에 도서관에나 있을법한 칸막이 책상, 책상 위에 표시된 번호, 조용한 실내 분위기, 가방을 멘 학생의 집중하는 모습까지 언뜻 보면 진짜 독서실 같은 분위긴데요. 자세히 보면 다들 라멘 한 그릇씩을 앞에 두고 면학(勉麵)이 아닌 면면(勉麵)에 전념하는 모습입니다.  


이치란에서는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먼저 식권 자판기에서 라멘 식권을 삽니다. 종류는 돈고츠 라멘 하나고요. 삶은계란이나 차슈 등의 고명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라멘만 시켜도 기본적으로 차슈와 파가 조금씩 얹어 나오니 보통은 라멘(왼쪽 사진 첫번째 버튼) 식권만 사도 됩니다. 다음엔 빈자리를 찾아야 하는데요. 현황판을 보고 불이 들어와 있는 공석(空)을 확인한 후 가게에 들어가야 합니다.    

식권은 이렇게 생겼어요.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다소곳이 놓인 젓가락과 종이 한 장이 눈에 띕니다. 물론 일본어로 쓰여 있고요.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종업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황하며 앉아있었더니 어디선가 손 하나가 쑥 들어와 한국어 주문서를 내밉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언어별로 주문서를 갖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한국어도 있네요. 개인별로 국물의 진하기, 기름진 정도, 마늘, 파, 차슈(돼지고기), 비젼 조미료(고춧가루)등의 많고 적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맛 집중 시스템'이라고... 나만의 공간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게 이 집의 컨셉인거죠. 전 기본 하카다 라멘맛을 보고 싶었기에 대부분 기본으로 선택했습니다.

뒷장에는 추가로 비용이 드는 항목이 따로 표시되어 있더군요. 라멘의 양이 적으니 남자분들은 추가사리나 추가 반사리 정도 함께 주문하시는 것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차갑다 못해 송글송글 이슬이 맺힌 꼭지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후쿠오카의 여름날은 어찌나 덥던지,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이 참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다시 손 하나가 나타나 라멘 한 그릇을 놓고, 이번엔 대나무 발까지 내리고 사라집니다.
분위기 참 묘하죠. 사방이 막힌 독서실에 놓인 라멘이라니... 고독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분위기에 적응이 안 돼서 칸막이 너머로 다른 사람들의 라멘을 훔쳐보다가 조심스레 국물부터 한 입 떠먹어 봅니다. 그런데...오~! 정말 진하고 구수하네요. 돼지뼈를 고아 만든 돈고츠 육수가 설렁탕이나 돼지국밥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춧가루를 잘 섞어서 차슈와 함께 라멘을 한 젓가락~! 적당히 삶아진 돼지고기가 라멘의 감칠맛을 돋우네요.   

하카다 라멘의 특징인 가는 면은 조금 덜 삶겨 딱딱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먹다보니 쫄깃하게 씹히는 맛에 적응이 되더군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뜨끈한 라멘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사실 가족과 함께 여행중이었던 저는 이렇게 혼자 먹는 시스템이 좀 불편했지만, 라멘 맛을 보니 혼자 먹는 고독함 쯤은 감수할만 했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다시 군침이 도네요. 

이치란은 1960년부터 현재까지 40여년간 돈고츠 라멘만을 만들어온 하카다 라멘 전문점입니다. 후쿠오카를 본거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전역에 30여개의 체인점을 둔 대규모 라멘 체인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직접 맛을 보니 사람들이 왜 이토록 이치란의 라멘에 열광하는지를 알것 같더군요. 

일본인 뿐 아니라 일본을 여행하고 온 한국인들이 강력히 추천하는 이치란의 라멘. 후쿠오카를 찾는 여행자라면 더더욱 꼭 맛봐야 할 지역의 명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쿠오카에는 하카다역 앞 센터빌딩 지하, 캐널시티 지하, 텐진 등 여러곳에 지점이 있으니 여행중 가벼운 점심식사로 한끼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제가 다녀온 곳은 하카다 역 앞에 있는 센터빌딩 점이었는데요. 자세한 지점 위치는 홈페이지 참조하시는 것이 정확할듯 합니다. ^^ http://www.ichiran.co.jp/pc/hp/tenpo/tenpo1.html

[여행 Tip] 이치란 (하카다역 센터빌딩점)
· 위치: 하카다역 건너편 센터빌딩 (후쿠오카 은행 있는 건물) 지하 2층
· 주소: 〒812-0011 福岡市博多区博多駅前2-2-1, 福岡センタービルB2F
· 전화번호: 092-473-0810



[관련 글]
[B컷] 
#1. 잠든 아이
하카다 역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더위에 지쳐 잠든 아이.
서서 졸고 있는 걸 안았더니 바로 깊이 잠들어 버렸다.
아빠는 이렇게 한 팔로 아이를 안고 독서실 같은 이치란에 앉아서 라면을 먹었다지...  
  

#2. 추억 속 독서실
사방이 네모난 칸막이로 막힌, 오직 열공을 위한 공간 독서실...
그런데 독서실에서 공부만 했던 사람이 있을까?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심야 라디오 프로에 사연도 쓰고, 심지어는 엎드려 잠을 자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이 없는 해방의 공간. 어두침침한 독서실에서 잠깐씩 자는 쪽잠은 어찌나 달콤했던지... 홀로 외로이 고독한 라멘을 씹으며 오랜만에 학창시절 향수에 젖어본다. (남편은 옆칸에서 자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말이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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