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스페인] 과자로 만든 외계도시,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여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í i Cornet)'이다. 

가장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를 비롯해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카사 비센스, 구엘 저택 등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가 보이는 구엘공원은 마치 '과자로 만든 도시'처럼 기묘하고 재미있다. 


▲ 과자로 만든 도시 같은 구엘공원에서, 진아와 정균


28일 여행 중 닷새째, 제대로 바르셀로나를 둘러보기 시작한 사흘째


아이들이 아팠다. 스페인에 도착한 그날부터 정균이 몸에 열이 올랐다. 장거리 비행, 정 반대의 시차, 한국보다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불었던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던 거다. 첫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둘째 날 부터 낮에만 살살 관광을 나섰는 데도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잘 버티던 진아도 전날 고딕지구를 많이 걸은 탓인지 힘들어 했다. 역시, 아이들과 하루에 여러 곳을 도는 건 무리였다아이들의 컨디션을 살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관람과 구엘공원만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색색의 구엘공원 입장권. 스페인 여행을 하며 입장권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 덕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문 열 즈음에 들어가 오전 내내 성당을 관람했다. 성당 내부는 볼 것이 많기도 했지만, 앉아 쉴 곳도 많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다행히 날도 점차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향한 구엘 공원. 


그런데 구엘 공원은 동시 입장객을 최대 400명까지만 받고 있었다. 400명이 넘으면 30분 단위로 일정 인원만 입장시키는데, 우리가 찾았던 날은 월요일임에도 사람이 많았다. 오후 3시 반에 도착해 티켓을 끊었는데도 5시 반부터 입장이 가능한 표를 받았을 정도! 그것도 5시 30분~59분까지 입장하지 못하면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 나온 부러운 스페인 아이들


쾌적한 공원 관람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인 것은 이해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구엘공원 입장 자체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도마뱀 분수와 타일 벤치가 있는 중앙광장에만 가볼 수 없다고 해서 뛰놀고 싶어하는 아이들과 공원 산책에 나섰다. (알고보니 타일벤치를 제외한 구엘 공원은 입장이 무료~!)





구엘 공원은 무척 넓었다. 흔히 알려진 타일 벤치 외에도 가우디의 고집스러운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자연미 넘치는 설계를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쌀쌀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 거대 산세베리아, 선인장, 야자수 모양으로 쌓아 올린 기묘한 돌기둥 등, 내려다 보이는 바깥 세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마치 외계 도시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가우디 박물관(Casa Museu Gaudi)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은 바르셀로나가 내려다 보이는 고지대에 영국풍의 전원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60채의 주택을 지어 분양할 계획으로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러나 자금 사정이 나빠져 집은 겨우 두 채만 완성된 채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 부지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위 사진이 바로 완공된 두 채의 집 중 하나인 가우디의 집이다. 현재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와 유품을 전시하는 가우디 박물관(Casa Museu Gaudi)으로 쓰이고 있다. 


 가우디의 침실


 가우디 하우스 내, 기도의 방과 화장실


 가우디의 의자들,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바트요 등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어울리는 가구와 의자까지 직접 디자인 했다.



가우디의 아버지는 주물 제조업자였다. 가우디는 학교를 졸업 한 후 집안을 도와 철 세공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가우디의 건축물과 가구에는 철 세공품이 자주 보인다. 가우디 하우스의 철문은 두들기고 덧붙여 만든 철문은 클로버 같기도 하고, 나뭇잎 같기도 한 것이 그 자체로 주변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품이었다. 




가우디 하우스를 둘러본 후, 우리는 공원을 산책하며 집시와 비누방울 놀이를 하기도 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도 남기고, 


 가우디가 디자인한 구엘 공원의 중앙 광장. 타일로 장식된 유선형 벤치가 아름답다. 


먼 발치에서나마 타일 벤치를 바라보며 2시간 남짓을 보냈다. 



드디어 기나긴 기다림 끝에 구엘 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중앙 광장 입성~! 입장하기 전에도 20분 정도 긴~ 줄을 섰다. ㅠㅠ

줄을 기다리면서는 모로칸 불법 노점상들의 호객행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모로칸 불법 체류자들의 노점과 집시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대놓고 소매를 털지는 않지만, 그들을 향해 몰래 셔터를 누르거나 감정을 상하게 했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 지 모르는 상황이서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였지만,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점 때문에 정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벤치의 타일 장식은 가우디의 제자, 주조르의 작품이라고 한다.


구엘 공원의 타일 벤치가 있는 광장은 원래 설계 당시, 거주민을 위한 중앙광장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장터와 공연이 열릴 계획이었던 것. 공사가 중단되며 부지 전체가 공원화 된 후에는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장소가 되었다. 유선형의 벤치는 타일 장식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직접 앉아보니 무척 편했다. 중간중간 수로와 빗물이 빠지는 구멍이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고인 빗물은 한 곳으로 고여 도마뱀 분수로 연결되는데, 그 예술적 가치 뿐 아니라 환경과 순환을 추구하는 세심한 가우디의 설계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중앙광장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유모차로는 정원을 돌아 내려와야 한다.) 구엘 공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도마뱀 분수에 닿는다. 분수 뒤로 거대한 그리스식 기둥이 늘어서 있고, 이 기둥이 떠받히고 있는 곳이 중앙 광장이다. 그래서 원래 이 광장의 이름은 '그리스 광장'이었다고 한다. 


도마뱀 분수는 구엘공원의 상징이자 포토 포인트.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도마뱀 양쪽으로 한 두명씩은 기본이었다.
양쪽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여서 단독샷을 찍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냥 갈 수 없어 버둥대는 아이를 안고 인증샷 한 장을 남겼다. ^^



공원 관람이 끝날 즈음, 진아가 많이 힘들어 했다. 머리에 손을 대보니 열이 펄펄 났다. 어쩐지, 동생이 타는 유모차를 너무 샘낸다 했더니...

이제껏 씩씩하고 밝게 걸어준 녀석에게 무척 미안했다.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했다. 저녁은 숙소에서 진아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여주기로 하고... 

내일은 스페인에서는 처음으로 차를 빌려 장거리 운전을 시작하는 날.

아이들이 좀 나아야 할 텐데... 이대로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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